그 때 신라 왕조는 당나라의 선진문화와 기술을 배우고 흡수하기 위해 자주 양반 자제들 을 당나라에 유학을 보내왔다。 당나라 주요한 역사저서를 보면 최치원의 이름이 자주 그러 한 문헌들에서는 하나같이 최치원을 대가처럼 높이 평가했다。당나라 유학이 하나의 계기가 되어 최치원은 중국 당나라 문화, 역사와 깊은 인연을 맺았다。 최치원이 중국에 와서 유학 한 목적은 공명을 위해서였지만 벼슬한 시간이 길지 않고 실권도 별로 없었다。 최치원은 중 국에서 사는 동안 정치보다는당나라 문화와 문학에 심취했다。 최치원은 중국에서 여러 지역 을 두루 돌아다니면서 많은 작품을창작했는데 그 중 후세에 많은 영향을 준 저서는 거의 다 중국에서 완성했다。
필자는 본 논문에서 최치원의 중국에 와서 이동한 지역들을 추적하면서 그가 그런 곳에서 어떤 인물들과 접촉하면서 어떤 영향을 받았으며 그리고 어떤벼슬을했는지를 구체적으로 살 펴보면서 그가 중국에서 받은 문화적인 영향들을 도출해내려고 한다。 그리고 가급적이면 최 치원의 중국에서 쓴 시나 저서들을 그가 살았던지역들과 결부시켜 그의 문학을 다시 한번 분석하고 조명하겠다。
2。선행연구
지금에 이르기까지 최치원에 대한 연구는 다양한 방법, 다양한 각도, 다양한 측면서 연구
되어 왔다。 그 연구성과 또한 괄목할만 정도에 이르렀다。 최치원에 대한 연구성과는 아래의
세 가지 방면으로 종합할 수 있다。 첫째; 제조욱(诸煜)의「최치원이 과거급제할 때의 연령에 대한 소고(致远登第年龄考) 」[“扬州教育学院学报”,2001 年第 3 期] 라는 논문은 최치원의 출 신, 연령, 그리고 최치원이 급제한 연대에 대해 고증하는 데 주력했다。 두번째는 최치원의 문학성과에 대한 연구같은 것들이다。 예하면 서연생(徐寅生)의「동국문종최치원의 문학(东国 文宗崔致远的文学) 」[ “语文学”1、2,1956/1958)], 송전호「최고운의 시를 다시 논함(再 论崔孤云的诗) 」 국학논문집, 1979[”国学论文集”4,1979], 등이 있다。 이러한 작품에 대한 연 구가 비교적 심도 있게 진행됐기에 그에 대한 성과도 크고 많다。 세번째는 최치원의 철학사 상에 대한 분석과 연구이다。 예하면 송항룡(宋恒龍)의「최치원사상연구(崔致远思想研究) 」 [ “韩国哲学思想研究” 4,1982。]、김복순(金福顺)의「최치원의 불교사상에 대한 탐구(对崔致 远佛教思想的探求) 」[ “韩国史研究 6”43,198]등이 이다。 이러한 논문들은다。최치원의 사상 교류방면에 대해 연구한 것들로서 그로서의 연구 가치가 있다。文献综述
이상의 논문들로부터 알 수 있다싶이 지금까지 최치원에 대한 연구들은 대부분 최치원의 문학작품의 지위와 영향에 대한 연구가 비교적 많았고 그의 신세나 행적에 관한 논문들도 일정한 정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연구들을 종합하여 보면 여전히 적지 않은 것들이 우 리들의 연구를 기다리고 있다。 즉 최치원이 중국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을 인정하면서도 그 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는 따라지 못하고 있다。 본 논문에서는 최치원이 중국에서 산 지역들 은 각각 나누어서 그가 받은 중구문화의 영향들을 고찰해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