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절강지역과 한국독립운동의 관계
(1) 한국의 항일독립운동
1910년에 일본은 조선의 국권을 강탈하여 식민 통치 기관으로서 조선총독부를 설치하고 총칼로써 탄압 지배하는 무단(武斷) 정치를 단행하였다。 총독부는 이른바 ‘토지조사사업’이란 것을 실시하여 조선농민들의 토지를 빼앗는 등 경제권마저 독차지하였다。文献综述
그러나 일본의 압제 속에서도 지식인들에 의한 조선 애국계몽운동이 활발하게 추진되어, 조선민족의 항일자주의식은 점점 높아져 갔다。 그후 1919년 파리강화회의에서 민족 자결주의가 제창되자, 조선민족은 3월 1일에 『독립선언서』를 발표하고 대대적인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3·1조선민족독립운동은 일제의 무자비한 탄압으로 결국 실패하고 말았지만, 이를 계기로 중국 상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어 조직적인 독립운동을 추진해 나갔다。 한편 만주(동북)에서는 무장한 조선독립군들의 활동이 강화되어 홍범도(洪範圖) 부대는 봉오동(鳳梧洞) 전투에서, 김좌진(金佐鎭)부대는 청산리(靑山里) 전투에서 강대한 일본군대를 격파하여 큰 승리를 거두기도 하였다。
조선국내에서도 1926년에 6·10독립만세운동 · 광주학생운동과 같은 항일운동이 계속되고, 신간회(新幹會) · 근우회(槿友會) 등의 항일단체가 조직되어 활동하였다。 특히 1932년에는 이봉창(李奉昌) · 윤봉길(尹奉吉) 등에 의한 항일의거가 잇따라 일어나, 조선민족의 강인한 저항의식을 나타냈다。
이 밖에도 민족자주독립의 기초를 닦기 위한 경제적 자립운동과 교육 · 언론 · 문예 등을 통한 항일 민족운동이 폭넓게 펼쳐졌으나, 일본의 악랄한 민족말살정책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